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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의 길 30, 손을 맞잡은 그날 역사가 바뀌다

기사승인 2019.08.22  13: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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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형식의 비폭력 저항 운동 중 하나인 ‘발트의 길'

1989 년 8 월 23 일, 탈린 (에스토니아), 리가 (라트비아), 빌니우스 (리투아니아)의 시민들 약 200만명은 거리로 나와 서로 손에 손을 맞잡으며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형식의 비폭력 저항 운동 중 하나인 ‘발트의 길’을 보여줬다.

발트해 연안 국가들의 민족자각  또는 독립 운동(1988-1991년) 시기에 일어난 670km 길이의 살아있는 인간 사슬은 그들의 주권회복을 위한 발로(發露)의 정점으로, 이것은 1939년에 발생한 사악한  비밀 협정인 일명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으로 인해 1940년에 소련에 강제 편입된 발트 국가들의 항거 운동이다.

   
▲ 사진제공=울디스 브리에디스, 비탈리스 스티피니에크스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은 소련과 나치 독일 사이에 체결된 비밀 불가침조약으로, 1939년 8월 23일 두 강대국은 동유럽을 분할 점령하는데 합의했다. 1주일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고 나치 정권 치하 기간(1941~1944)이 지난 후 라트비아는 1991년까지 강제로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소련은 발트해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연방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발틱의 길(Baltic Way)에 참가한 시위대는 소련의 발트 국가의 점령과 합방은 불법이며, 각국의 희망에 반(反)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

이에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이 체결된 지 50년이 지난 1989년 8월 23일 19시, 발트국가들의 각 마을과 도시의 성당에서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애도의 리본은 1년 전에 금기시된 국기들을 장식했다. 에스토니아 인민전선 라바린네, 라트비아 인민전선 라트비아 타우타스 프론테, 리투아니아의 사유디스와 같은 민족운동세력은 각 국가의 ‘발트의 길’에 참가한 시민들을 이끌었다. 자유를 뜻하는 의미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라이스베스(laisvė)를,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바바두스(svabadus)를, 그리고 라트비아 사람들은 브리비바(brīvība)를 외치며 각 국가의 함성이 이어졌다. 나치 독일과 소련 공산정권의 상징들은 큰 모닥불에 불 타올랐다. 발트 3국은 반세기 동안 이어진 소련의 점령, 식민지화, 폭력화, 공산주의 집단학살의 중단을 요구했다.

이처럼 발트의 길(Baltic Way)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국가 독립을 되찾는데 있어 중요한 구심점이었으며, 다른 지역의 독립 운동에도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다. 이것은 소련이 점령한 베사라비아, 몰도바의 루마니아인들에 의해 키시네프에서도 실현되었고, 1990년 1월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리비우에서부터 키예프로 가는 길 위에서 손을 잡는 형태로 재현되었다. 발트의 길 직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비폭력 혁명인 벨벳 혁명이 시작되어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이 전복됐다.

유네스코는 발트의 길의 기록을 담은 사료를 탁월한 가치를 지닌 기록유산의 항목으로 인정하며 2009년 이것을 세계기록유산에 포함시켰다.

손다솜 기자 edt@koreapost.com

<저작권자 © 코리아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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