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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위기의 한일관계

기사승인 2019.08.20  10: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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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코리아포스트한글판 박인휘 교수] 한일관계가 최악의 상황이다. 역사문제를 둘러싼 인식과 관점의 영역에서 머물런 한일갈등은 일종의 경제전쟁 측면까지 띠게 되었다. 반도체 핵심 부품에 대한 한국으로의 수출 규제와 전략물자 수출의 신뢰성을 부인하는 화이트리스트 삭제는 일본에서 촉발한 경제전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이러한 조치는 한일간 역사인식 차이에 머물던 갈등관계를 경제 분야로까지 확산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조치에는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문제를 처리하는 우리 대법원 결정에 문재인 대통령이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불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역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대일관계를 맞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고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더구나 한일관계는 하나의 독립적인 외교정책으로 작용하지 않고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수많은 대외관계와 다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선 문재인 정부의 핵심적인 과제인 한반도 비핵평화프로세스 추진 과정에서 일본은 매우 중요한 우리의 조력자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아시아지역에서 자유경제와 민주주의를 확산하고자 하는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에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한미일 관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부상에 맞서 중국이 국제질서 안에서 국제규범과 규칙을 준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한일간 긴밀한 협조체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한일관계는 서로 호혜적인 이익을 누리는 관계였다. 쉽게 수치화할 수 있는 양국 관계는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얽히고설킨 혜택까지 따지자면, 양국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다. 한일 모두 경제활동을 위해, 안전하고 평화로운 아태지역의 해상수송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환경이나 에너지 문제에서는 이미 공동운명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공동운명체의 이면에는 역사적인 과제가 남아 있어서, 공동의 운명을 건강하고 축복되게 견인하지 못하고, 미움과 오해와 원망의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지난 7월말 치러진 선거에서 또다시 승리를 거둔 아베 총리는 개헌을 위한 의지를 더욱 강조하고 있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일본 내 우익세력의 정치적 및 제도적 입지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비록 일본은 역사논쟁을 경제전쟁으로 확장시키는 우를 범했지만, 다행히 우리 정부는 분명한 비난 메시지는 밝히면서도 경제전쟁을 다시 안보전쟁으로 확산시키는 우는 범하지 않고 있다. 알려진 대로 정부는 한일군사정보교류협정(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파기까지는 고려하지 않고 다만 협정 유지를 전제로 정보 교환 활동만 일시 정지하는 입장을 결정했다.

   
▲ 2017년 9월 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이(오른쪽)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왼쪽) 만나 악수한 뒤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현재의 한일관계가 쉽게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게 더 큰 문제이다. 경제전쟁을 촉발한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반일감정은 앞으로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광화문 광장을 찾은 반일 촛불집회는 그 규모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국제자유주의질서를 어느 누구보다도 잘 준수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경제 제재를 가했다는 사실에 우리 국민들의 충격과 당혹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100년이 다 되어가는 역사문제와 한일강점기 일본의 만행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감정은 하루 아침에 녹아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고민이 이 번 8.15 문재인 대통령의 경축사에 고스란히 배어있다고 생각한다. 정확하기 짐작하기는 어려우나, 대통령의 입장에서 한일관계 악화로 인한 상당한 수준의 경기불황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역사문제는 도저히 양보하기 어려우니, 일본의 경제보복을 감수하고라도 참아내고 끝까지 갑시다, 이렇게 국민들에게 호소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최근 문대통령이 쏟아낸 대일 메시지보다는 다소 누르러진 상태에서 외교적 해법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 것으로 판단된다.

답답한 노릇이지만, 그래도 길을 찾아야 한다. 우선 일본에게 가해자의 책임은 선택적이지 않은 법이라고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 세계 어느 사례를 보더라도,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골라서 책임을 지는 일은 없다. 일본 정부가 우리에게 조금만 시간의 여유를 주면서 대범하게 나온다면, 그 사이 우리가 작은 해법의 실마리라도 찾아낼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현재 한국의 대외관계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일본이다. 북한 문제를 포함한 대외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어려운 처지를 이용해서 오히려 목표를 높게 설정하여 과욕을 부린다면, 대일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는 점을 일본 지도자들은 헤아려야만 한다.

한일관계의 리셋(reset)은 가능할까? 필자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단 조급한 리셋 시도는 미래 시점에서 우리에게 또 다른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기 있기 때문에, 잠시 숨을 고르며 정지(整地) 작업에 몰두할 필요가 있다. 일단 상황이 이렇게 커진 이상 현 단계에서 한일관계를 덮어버리는 일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민경제를 포함하여 일본과 무턱대고 갈등을 장기화하는 것도 묘수는 아닐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일관계의 멀티트랙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일본 정책에 있어서 더 이상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상호이익을 가져다 주는 한일관계의 리셋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ihpark@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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