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1월’ 아제르바이잔 독립투쟁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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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1월’ 아제르바이잔 독립투쟁 기념일
  • 이경식 기자
  • 승인 2017.01.1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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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스트 이경식 기자] 1월 20일은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국가추모일이다. 1990년 1월 20일은 아제르바이잔의 독립 및 영토보전을 향한 투쟁이 역사에 새겨진 날이다.

1990년 1월 20일 일어난 소비에트 군의 바쿠 침입은 아제르바이잔에 유례없는 비극을 불러왔다. 아르메니아의 공세행위를 지원한 소련 및 아제르바이잔을 향한 영토요구에 대항하는 시위가 열렸다.  고르바쵸프 대통령이 서명하고 소련 최고위 최고 회의가 선포한 비상사태에 따른 대항 및 봉기를 억압하기 위해1월 19일 밤부터 20일까지 26,000명의 소련군이 바쿠에 침입했다.

아제르바이잔 국민들은 이런 움직임에 대해 전달 받지 못한 상태였고 법령에 관한 소식은 바쿠의 병원과 시체안치소 및 도로 위의 부상입고 쓰러지거나 사망한 많은 시민들을 통해 퍼졌을 뿐이었다.또한 소비에트군은 국제사회에 소식이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영 TV빌딩을 공격하여 전력 공급을 차단했다. 진압은 타협 없이 잔혹했고 결국 133명의 아제르바이잔 시민들이 사망하고 약 7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희생자들 중엔 노인, 여성, 아이들 및 의료인들 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무분별한 살인은 아제르바이잔인, 러시아인, 유대인과 타타르인에게까지 자행되었다. 바쿠에서의 대학살뿐 아니라 아제르바이잔의 란카란 과 네프트찰라 지역에서도 살인이 자행되어 26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용맹한 아제르바이잔 후예들은 그 무엇보다도 국가의 자유, 명예와 위엄을 위해 본인들의 삶을 희생하고 순교자가 되었다.소비에트 군사 개입으로 자행 된 아제르바이잔 대학살은 자국에 의한 보이지 않는 공격과 시민 처형이었다. 이는 구 소련과 아제르바이잔 사회주의 공화국의 헌법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었다. 그날 민간인들 말살을 위해 군사를 파병한 소련 정부는 가입되어있었던 유엔헌장과 세계인권선언, 1996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포함한 국제법을 어겼다.

하지만 이 비열한 행위도 아제르바이잔 시민들이 소비에트 연합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의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용감한 투쟁의 결과로 아제르바이잔 국민들은 독립을 되찾고 아제르바이잔은 독립국이 되었다.
유혈이 낭자했던 시기로부터 많은 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제르바이잔 국민과 국가는 많은 무고한 이들의 생명을 앗아간 그 끔찍했던 밤을 기억하고 매년 1월 20일 비극을 추모한다. 대통령, 장관 및 국회의원 내각의 일원들, 정부 고위관리들을 포함한 수천 명의 국민들이 순교자의 거리를 방문해 1990년 1월 20일 자유와 독립을 위해 희생된 용감한 아제르바이잔 국민의 후손들을 추모하고 있다.
1월 20일 비극은 무고한 시민들의 막대한 손실과 죽음을 초래했지만 아제르바이잔 국민의 정신과 자부심을 증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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